‘국민 아버지’ 최불암 별세…67년 연기 인생 마침표, 한국 방송사의 큰 별 지다
우경원 기자
k01083510007@gmail.com | 2026-10-30 02:19:55
‘수사반장’ 박 반장·‘전원일기’ 김 회장으로 국민적 사랑 받아
‘한국인의 밥상’ 14년 진행…시대와 세대를 아우른 국민배우
[한국경제일보 우경원 기자] 한국 방송과 대중문화의 한 시대를 상징했던 원로 배우 최불암(본명 최영한)이 별세했다. 향년 87세.
30일 방송계에 따르면 최불암은 지난 29일 오후 10시께 서울 강서구의 한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던 중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지난해 3월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은 뒤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오랜 기간 진행해 온 KBS 1TV '한국인의 밥상'에서 하차했다. 이후 재활 치료에 전념했으나 건강이 악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67년 동안 연극과 영화, 드라마를 넘나들며 대한민국 현대사를 국민과 함께한 배우의 생애가 막을 내렸다.
■ 연극 무대에서 시작된 67년…한국 드라마의 역사가 되다
1939년 인천에서 태어난 최불암은 서울 중앙고등학교와 서라벌예술대학,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에서 수학했다.
1959년 극단 실험극회의 연극 '햄릿'으로 데뷔한 그는 1965년 국립극단 단원으로 활동하며 연기력을 쌓았다.
1967년 서울중앙방송 특채 탤런트로 선발되면서 본격적인 방송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중장년과 노년 인물을 폭넓게 연기했다. 실제 나이보다 훨씬 많은 인생의 무게를 표현하는 연기력은 그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평가받았다.
특히 1971년 방송을 시작한 MBC '수사반장'은 그의 이름을 국민에게 각인시킨 작품이었다.
그가 연기한 박영한 반장은 범죄와 맞서면서도 인간에 대한 연민과 정의감을 잃지 않는 인물이었다. 최불암은 강직함과 따뜻함을 함께 보여주며 한국형 수사극의 대표적인 배우로 자리 잡았다.
1980년부터 2002년까지 방영된 MBC '전원일기'에서는 양촌리 김 회장으로 출연했다.
22년 동안 이어진 이 작품에서 그는 가족과 마을 공동체를 지탱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의 묵직한 목소리와 절제된 연기는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서 변화하는 한국 사회의 가족상을 대변했다.
이후 '제1공화국', '제2공화국', '여명의 눈동자', '그대 그리고 나', '영웅시대', '궁', '식객' 등 여러 작품에서 폭넓은 연기를 선보였다.
2024년에는 '수사반장'의 이전 이야기를 그린 MBC '수사반장 1958'에 특별 출연하며 원조 박 반장의 존재감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 국민의 밥상에서 서민의 삶을 만나다
최불암은 드라마뿐 아니라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도 오랫동안 국민과 함께했다.
1999년부터 KBS '좋은나라 운동본부' 진행자로 활동했으며, 2011년부터는 '한국인의 밥상'을 통해 전국 각지의 음식과 그 속에 담긴 역사, 지역문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달했다.
그가 14년간 진행한 '한국인의 밥상'은 음식 자체보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의 삶과 공동체의 기억을 조명하는 프로그램으로 사랑받았다.
전국의 농어촌과 전통시장을 찾아 주민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평범한 밥상에 담긴 세월을 특유의 따뜻한 목소리로 전했다.
이러한 활동은 최불암을 단순한 배우를 넘어 국민의 일상과 정서를 함께해 온 방송인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 정치·사회공헌에도 발자취…어린이와 청소년 지원
고인은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으로 선출돼 1996년까지 의정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정치 활동 이후에는 다시 연기 현장으로 돌아와 배우로서의 길을 이어갔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사회공헌에도 꾸준히 참여했다.
미아 찾기와 희소·난치병 어린이 돕기 방송을 비롯해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전국후원회장, 사단법인 제로캠프 이사장 등을 맡아 사회적 지원 활동에 힘썼다.
그는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목련장과 은관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또 '수사반장'을 통해 경찰의 이미지를 높인 공로로 명예 경찰에 위촉됐으며, 2024년에는 민간인 최초로 명예 국가수사본부장에 위촉됐다.
■ ‘파하’ 웃음 남기고 떠난 국민배우…세대를 잇는 문화유산
최불암의 연기는 한국 사회의 변화와 함께했다.
'수사반장'에서는 정의를 지키는 형사였고, '전원일기'에서는 가족과 공동체를 이끄는 아버지였다. '한국인의 밥상'에서는 이웃의 이야기를 듣고 전달하는 친근한 안내자였다.
특유의 중후한 목소리와 호탕한 웃음은 오랜 세월 대중의 기억에 남았다.
지난 5월 MBC는 그의 60여 년 연기 인생을 돌아보는 다큐멘터리 '파하, 최불암입니다'를 방송했다. 고인은 재활 치료에 전념하기 위해 직접 출연하지 않았지만, 동료 배우들의 증언과 작품 기록을 통해 그의 연기 철학과 생애가 다시 조명됐다.
한국 방송산업이 흑백TV 시대를 거쳐 디지털·온라인 플랫폼 시대로 발전하는 동안 최불암은 변함없이 대중의 곁을 지켰다.
그의 작품들은 단순한 인기 드라마를 넘어 당시 한국인의 생활상과 가족관계, 사회적 가치관을 담은 문화적 기록으로 남게 됐다.
유족으로는 배우 김민자와 아들 동녘 씨, 딸 동비 씨가 있다.
대한민국 국민의 아버지로 기억될 배우 최불암. 그의 67년 연기 인생은 끝났지만, 작품 속에서 전한 인간애와 따뜻한 목소리는 한국 대중문화의 소중한 유산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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