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는 해명하고 민주당은 사과…추 지사는 화재 현장에서 관련 질문에 “그런 얘기 하지 마시죠”
“살아있죠?”
지난 16일 경기도 부천의 한 공장 화재 현장. 검게 그을린 방화복을 입은 소방관이 동료의 생사를 확인하며 울먹였다.
“살아있어, 살아있어.”
동료의 대답을 들은 소방관은 끝내 눈물을 참지 못했다. 조금 전까지 불길 속에서 함께 사투를 벌였던 동료가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에 화재 진압을 마친 소방관들은 현장을 쉽게 떠나지 못했다.
이날 현장에는 추미애 경기도지사도 방문했다. 추 지사는 부상 소방관들의 회복을 위해 경기도가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번 화재는 추 지사가 소방을 '골치 아픈 재정 빨대'에 비유해 논란이 벌어진 지 불과 사흘 만에 발생했다.
동료의 생사를 걱정하며 눈물을 흘리는 소방관들의 모습과 추 지사의 발언이 대비되면서 소방 예산에 대한 인식과 공직자의 발언 책임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화재 현장에 가장 먼저 뛰어든 소방관들…6명 병원 이송
지난 16일 오전 8시 38분께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내동의 한 금속부품 도장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소방당국은 대응 2단계까지 발령하며 진화에 나섰고, 오전 10시 22분께 큰불을 잡은 데 이어 오전 11시 6분께 완전히 진화했다.
그러나 진화 과정에서 소방관 6명과 공장 관계자 2명 등 모두 8명이 다쳐 병원으로 이송됐다.
특히 가장 먼저 화재 현장에 진입했던 소방관 2명이 급격히 확산한 불길과 연기에 휩싸여 중상을 입었다. 이 가운데 1명은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옮겨졌으며, 다른 1명은 치료 중 의식을 회복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장 내부에는 약 2t의 인화성 물질이 보관돼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소방당국은 정확한 화재 원인과 위험물 관리 실태 등을 조사하고 있다.
화재를 진압하는 동안 소방관들은 자신과 동료의 생명까지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부상 소식을 듣고 동료의 생사를 묻던 소방관의 울음은 이날 현장의 긴박함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남았다.
사흘 전 추미애 지사 “소방이 가장 큰 골치 아픈 재정 빨대 같다”
추 지사는 지난 1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소방 예산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부담을 설명하면서 “소방이 가장 큰 골치 아픈 재정 빨대 같다”고 말했다.
소방공무원이 2020년 국가직으로 전환됐지만 인건비와 운영비 등 상당 부분을 여전히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는 재정 구조를 지적한 발언이었다.
국가직 전환에 걸맞게 정부의 소방 예산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문제 제기 자체는 정책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소방 조직을 '재정 빨대'에 비유한 표현이 적절했는지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와 한국소방공무원노동조합 등은 소방공무원의 헌신을 폄훼하는 표현이라며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소방 예산은 단순한 지출이 아니다. 소방관의 안전장비와 보호구, 소방 인력의 확충, 구조·구급체계 유지 등 국민 안전을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할 공공재정이라는 점에서 발언의 적절성을 둘러싼 논쟁이 커졌다.
현장 찾은 추미애…소방관 눈물 앞에서는 위로, 발언 질문에는 답변 피해
추 지사는 16일 예정된 제주 일정을 취소하고 부천 화재 현장을 찾았다.
그는 동료의 부상 소식에 눈물을 흘리는 소방관들과 마주한 자리에서 부상 대원들의 치료와 회복에 경기도가 힘쓰겠다며 위로의 뜻을 전했다.
그러나 취재진이 '소방 재정 빨대' 발언에 대한 소방노조의 반발을 언급하며 입장을 묻자 “그런 얘기 하지 마시죠”라고 답한 것으로 보도됐다.
화재 현장에서 부상자 구조와 사고 수습이 우선이라는 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이미 소방공무원 노동조합들이 공개적으로 사과를 요구하고 있었던 만큼, 추 지사가 별도의 공식 입장을 통해 자신의 발언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소방관들이 목숨을 걸고 화재를 진압한 바로 그 현장에서 도지사가 동료의 생사를 걱정하는 대원들의 눈물을 직접 목격했다는 사실은 이번 논란의 의미를 더욱 무겁게 한다.
경기도가 해명하고 민주당이 사과…정작 발언 당사자는?
경기도는 지난 15일 홍은광 대변인을 통해 추 지사의 발언이 소방공무원을 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국가직 전환에도 지방자치단체가 상당한 소방 재정을 부담하고 있는 현실을 강조하려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이어 16일에는 더불어민주당이 이용우 대변인 명의의 논평을 내고 추 지사의 표현으로 상처받은 소방공무원과 가족들에게 공식 사과했다.
민주당은 소방관들의 헌신을 존중한다면서 인력과 장비 확충, 근무환경 개선 등에 필요한 예산 확보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기도의 해명과 민주당의 사과가 발언 당사자의 책임까지 대신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경기도 대변인은 지방재정 구조를 설명할 수 있다. 소속 정당도 논란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힐 수 있다.
하지만 국정감사라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논란이 된 표현을 사용한 사람은 추미애 지사 본인이다.
따라서 해당 표현을 사용한 취지와 소방공무원들의 반발에 대한 입장을 발언 당사자가 직접 밝히는 것이 책임 있는 소통이라는 지적이다.
소방 재정의 해법과 공직자의 발언 책임, 함께 논의해야
이번 부천 화재와 추 지사의 발언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두 사건은 소방 재정과 소방공무원의 안전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을 돌아보게 한다.
국가직 소방공무원의 재정 부담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어떻게 분담할 것인지, 위험물 취급 사업장에 대한 예방과 안전관리 체계를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 화재 현장에 투입되는 소방관들의 안전을 어떤 예산으로 뒷받침할 것인지는 모두 중요한 정책 과제다.
동시에 공직자의 발언이 현장 공무원들에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추 지사가 소방 재정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려 했다는 경기도의 해명과 별개로, 발언 당사자가 직접 설명하고 소방공무원들의 문제 제기에 답해야 한다는 요구는 여전히 남아 있다. [
“살아있죠?”
부천 화재 현장에서 동료의 생존을 확인하던 소방관의 이 한마디는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일이 때로는 자신의 생명을 걸어야 하는 일이라는 현실을 보여준다.
소방 예산의 국가 부담 확대도, 소방관의 안전과 처우 개선도 필요하다.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공직자가 자신이 한 말에 대해 책임 있게 설명하는 일이다.
경기도의 해명과 소속 정당의 사과를 넘어, 추미애 지사 본인의 직접적인 입장 표명이 요구되고 있다. [한국경제일보 우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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